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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에 대한 끝없는 탐색: 지식과 인지의 장벽을 넘어서

    본질

    1) 本質

    本(본)은 "근본", "기초", "원래"와 같은 의미를 지니며, 어떤 것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심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대상이나 개념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이나 시작을 의미하는 데 사용된다.

     

    質(질)은 "성질", "질료", "본래의 상태"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것의 성질이나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상태를 나타낸다.

     

    2) essence

    라틴어 'essentia'에서 유래하며, 'being'이나 'existence'를 의미하는 'esse (존재)'에서 파생된 것이다.

     

    3) Ουσία' (Ousia)

    그리스어로 본질, 실체를 뜻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being' 또는 'existence'의 근본적인 성질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Ουσία'는 'εἶναι' (einai, 존재하다)에서 유래한 단어로, '있음'의 상태를 나타낸다.

     

     

    본질이라는 개념을 여러 언어의 어원으로 종합하면, 이는 근본적인 특성이나 원래 성질을 뜻한다. 개인적으로 이는 언어와 문화적 사고의 경계를 초월하여 인간이 모든 만물을 이해하려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결국 무언가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고 관철하다보면 인간이 사고하는 언어와 문화는 자연스레 무너지고 그 존재 자체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이를 다시 꺼내려고 할 때 언어와 문화의 포장지가 씌워지게 될 뿐이다.

     

    3차원으로 된 우리 뇌 사고 관점을 벗어나 바라보는 본질 그 자체는 당연스레 우리가 다루는 언어, 철학, 과학, 예술, 종교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되려 그들에게 중요한 존재이다. 과학은 자연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려 하고, 예술에서는 인간 오감의 본질적인 진실을 표현하려고 하며, 종교 또는 영적에서는 본질에 대한 의미와 목적에 대한 이해를 추구한다.

     

    참고로 나는 무교이다. 이를 말하는 이유는 이 글에서 내가 불교 용어를 사용할 터인데, 종교적 신념과는 무관하다. 그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불교 용어에 많이 녹아져있기 때문에 이를 차용해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매체로만 사용할 뿐임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본질을 밝혀내다

    '본질을 밝혀내다.' '본질을 꿰뚫다.' '본질을 알아차리다.' '본질을 이해하다.' 이는 무슨 뜻일까? 근본적은 성질을 어떻게 알아차리며 이해를 하는 것일까? 본질은 어디에나 있다. 흔히 의사소통에도 본질은 내포되어 있다.

    • 'Alice: (강한 어투로)John!' 
    • 'Alice: (강한 어투로)Bob!'

     

    만약 이전 상황이나 내용을 알고 있다면 추측이 쉬워질까?

    • 'Alice와 John은 오래된 친구 관계이다.' 추측) Alice는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John에게 소리지른다.
    • 'Alice와 Bob은 사이가 좋지 않다.' 추측) Alice는 사이가 좋지 않은 Bob에게 소리지른다.

     

    아니다. 그 사이에 많은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수도 있고,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명제가 있을 수 있다. 오히려 애매하게 아는 것이 독이 될 수 있다.

    • Alice와 John은 오래된 친구 관계이다. 그러나 그 날 아침 John이 Alice를 뒤에서 욕했다는 것을 Alice가 알아차렸다.
    • Alice와 Bob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러나 어제 Bob이 Alice에게 사과하자는 의미로 선물을 건네줬다.

     

    어떻게 본질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까? 예상과는 전혀 반대로 내용이 흘러갈 수 있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며 이를 단번에 알아채기란 쉽지는 않다. 

    • 'Alice: (강한 어투로) John! Did you curse at me?'
    • 'Alice: (강한 어투로) Bob! How are you doing? Thanks for the last night!'

     

    만약에 이전 상황이나 내용(Alice와 John은 오래된 친구 관계이고, Alice와 Bob은 사이가 좋지 않다)을 알지 못했다면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고 좀 더 상황을 분석해보며 Alice가 어떠한 의미로 John, Bob 불렀는지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나는 모든 것을 안다는 착각에서 진정한 본질을 찾는 길을 놓친 것이다. 

     

    소지장(所知障)과 번뇌장(煩惱障):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는 지식과 아집의 감옥에 갇히다. 

    이전에 어느 스타트업의 백엔드 엔지니어의 여정은, 처음 접한 프로그래밍 언어와 복잡한 기술 스택 앞에서 혼란스러운 출발이었다. 선임자의 부재, 그래프 DB, 멀티쓰레딩 동시성 처리, 이벤트 드리븐 아키텍처는 나를 더욱 당혹스럽게 했다. 팀장은 해당 업무에 대한 지식은 적지만 전체적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 개발자분을 따르라고 하였다. 책임감이 강한 나로서는 이전에 창업하였을 때와 마치 나의 창업 아이템이라 생각하고 밤낮없이 실무 프로젝트에 몰두하였고 많은 성과와 경험을 얻어내었다. 전체 프로젝트 70% 가량 코드를 수정하고 새롭게 개발하며 서비스를 운영해나갔다. 나중에 가서는 시니어가 되려 나에게 물어볼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서로 쌍방에서 어떻게 해야하지 모를 때가 많았다. 그럴때 마다 몇몇 시니어분들이 와서 이건 저렇게 해야 한다 저건 이렇게 해야 한다 늘 의견을 내놓았다. 지금에 와서는 누군가는 인정을 누군가는 도움을 주려했음을 알기에 모두 이해하고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마음 속에서는 늘 "내가 맞아! 내가 이 프로젝트의 대부분을 알고 문제점도 충분히 파악하고 해결해나가고 있어!"라는 생각이 화를 나게 만들었다. 과연 이러한 태도가 올바른가? 단순히 해당 프로젝트를 대부분을 안다고 해서 주변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려 한 것이 잘한 것일까? 아니다. 나는 단순히 책임감이 강한 나에 사로잡혀 앞을 못보는 어리석은 놈이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책임감에 숨어든 집착과 지식에 대한 과신이 나를 소지장(所知障)과 번뇌장(煩惱障)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였다. 

     

    불교에서는 소지장(所知障)[각주:1][각주:2]을 내가 경험한 지식의 감옥이자, 나의 인식과 해석이 진정한 본질에서 벗어나 있음을 의미한다. 프로젝트에 대한 나의 깊은 이해와 기여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조언과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내 지식과 판단이 절대적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이는 현상의 본질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잘못된 지식과 개념에 갇힐 수 있는 위험성이 높다. 대부분 맞아도 한번 장애가 나면 장애가 난 것이다. 

     

    번뇌장(煩惱障)[각주:3][각주:4]은 내가 마음속으로 "내가 맞아! 내가 이 프로젝트의 대부분을 알고 문제점도 충분히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어!"라고 외치던 순간들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자아에 대한 집착과 감정의 동요는, 불필요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었다. 

     

    이들은 개인이 현상의 진정한 본질을 깨닫는 것을 방해하는 근본적인 인식의 오류 현상이다. 이는 지식의 양이 쌓여질수록 조심해야 한다. 흔히 지식의 양에 비례하여 바라보는 세계관이 커지며 통찰력이 상승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어느정도 지식의 양을 갖게되면 그 지식으로도 충분히 세상 만물의 모든 현상을 관철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실은 비춰지는 현상만 보고 빗대어 맞춰지는 것일 뿐 본질을 꿰뚫지는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되레 지식을 얻으려다가 어중간함에 꽉 막혀 아예 없느니만 못한 자가 되고만다. 이렇게보면 지식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식은 오히려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나아가는 데 있어서 충돌을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흔히 '어리게 살아라. 꼰대가 되지 말아라'라는 문장을 좋아한다. 여기에 소지장의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답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세상 모든 것이 궁금 덩어리들이었다. 자라면서 하나 둘 씩 궁금증에 대한 답이 내려지기 시작하며 삶에 대한 규칙, 습관이 자리잡았다. 자칫하면 이대로 자신이 살아오면서 적어내린 정답지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계속 어리게 사는 것이다. 그곳은 불변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마음 먹냐에 따라 성격, 습관, 규칙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소지장을 이해하게 되며, 아는 것에 갇힌 나 또한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이는 마치 엉킨 실을 푸는 것과 같다. 엉킨 실을 풀기 위해서는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실의 끝 부분이 아닌 실타래 속에 엉킨 부분을 찾아내면 된다.

     

    1. 물리의 제 1 원리 사고법

    엉킨 실타래를 찾는 것이 바로 본질을 밝혀내는 행위이다. 본질은 셀 수 없는 최소 단위가 아니다. 엉킨 실안에 또 다른 엉킨 실이 있을 수 있듯이 본질 속의 본질 그리고 그 속의 또 다른 본질...이 존재할 수도 있다. 어떻게? 여기 설명에 딱 어울리는 좋은 인터뷰 내용이 있다. 2013년 일론머스크 TED[각주:5]에서, 생각할 때 주로 경험적으로 얻거나 추정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과학 지식에 근거를 둔 정보를 통해 물질의 근본적인 것까지 파고들어 그로부터 다시 생각해 나가는, 일명 '물리의 제 1 원리 사고법'을 주로 쓴다고 말하며 예시를 보여주었다.

     


    TED 인터뷰 내용 일부

     

    저는 유추를 하는 것보다는 제1원리에서부터 추론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계획을 세울 때도 보통 유추를 바탕으로 계획을 수립하곤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지금껏 다른 것들도 그런 방식으로 행해졌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다른 누군가도 그렇게 해왔으니까요. 이런 유추로부터 추론해 나가는 것은 정신적으로 덜 부담스럽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1원리를 따르는 것은, 그런데 제1원리는 물리학적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말은 가장 근본적인 논거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문제를 압축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정말 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추론을 시작해 나가는 것입니다.

     

    일론머스크가 내놓은 제 1원리 사고법 스토리

     

    A: '배터리 팩의 가격은 너무 비싸. 앞으로도 계속 비싸겠지. 과거에도 그래왔으니까'

    Elon: '아닌데? 그거 참 멍청한 소리네'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위와 같은 식의 추론(과거에도 ~)을 적용한다면 절대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뭐 또 이런 소리를 하면 곤란하겠죠. 진짜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어요.

     

    A: '말이 워낙 훌륭해서 차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거야. 우리는 말을 타는 게 익숙하고, 말은 풀도 뜯어 먹고, 여기 온 사방이 풀로 뒤덮여 있잖아. 지금 이곳을 봐 사람들이 기름을 어디서 사냐고! 그러니 사람들은 절대로 차를 안 살거야' 

     

    그래서 배터리 같은 경우에도 사람들은 똑같이 말했습니다. 

     

    B: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역사적으로 보면 1kwh당 600달러가 드는데 미래에 이보다 가격이 더 떨어질 것 같지 않아.'

     

    그럼 저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제 1원리로 접근하면 이런거죠.

     

    Elon: '그래? 배터리팩은 뭘로 만들어지지? 배터리를 구성하는 물질 성분들은 어떤 것들이 있지? 거래소에서 이 물질들의 가치는 어떻게 형성되어 있지?'

     

    그럼 다음과 같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Elon: '배터리 팩은 코발트, 니켈, 알루미늄, 카본 그리고 가체 분리용 중합체 그리고 밀봉된 캔으로 구성되는구나.'

     

    이젠 이러한 성분의 가치로부터 세부적으로 쪼개 들어가 본질을 파고드는 겁니다.

     

    Elon: '이 금속들을 런던 금속거래소에서 구매한다면 각각의 금속들은 얼마 정도 할까?'

     

    그러면 1kWh 당 80달러 정도밖에 안 드는 것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각각의 물질들을 보다 영리하게 접근해서 이를 배터리의 형태로 결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할 만큼 훨씬 저렴한 배터리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일론머스크는 자신의 모든 편견, 기존 지식을 갖고 계속 의심을 한채 본질을 파고든다. 자신의 모든 편견, 기존 지식을 갖고 이를 계속 의심한 채 본질을 파고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자신 스스로를 늘 의심하고 경계해야 하며 갖춰진 지식 체계를 계속 수정해야 하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습관을 길러나가면 된다. 

     

    2. Metacognition 메타인지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본질을 밝혀내기 위한 일환으로 각 학문, 종교에서 어떻게 설명하냐에 따라 다르게 설명 될 뿐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접한 것은 '메타인지'이다. 이는 1970년대에 발달심리학자인 존 플라벨(J. H. Flavell)이 창안한 용어로, 남의 지시 이전에 스스로 자기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을 말한다. 상위인지, 초인지라고도 한다.[각주:6] 자신의 생각에서 생각으로 더 깊이 파고들며, 자아를 인지하고, 반성하고 뉘우치며 실수를 답습하지 않는다. 이 또한 이게 엉킨 실을 풀 수 있는 열쇠이며, 인지에 대한 인지로 소지장에 갇힌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지 인지이자,  일론머스크의 제 1 원리 사고법이라 할 수 있다.

     

    메타인지 사고법

     

    DeepLearning의 BackPropagation

    내가 컴퓨터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우주 속에 또 작은 우주로 프랙탈 구조의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학습 메커니즘, 소지장에 대한 장벽을 메타인지로 엉킨 실을 풀어내듯이 여기서도 엉킨 실을 푸는 열쇠를 찾아내는 재미있는 히스토리가 있다.

     

    1900년대 초반 힐베르트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인류의 새로운 목표 '생각하는 기계'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튜링 머신'이 나오고 발전은 계속되었지만 기계로 만드려고 보니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은 어떻게 생각할까? 뇌를 들여다보았더니 굉장히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도 기계로 구현해내기 위해 단순화해서 연결된 부분만 자세히 보았더니 신경 세포 뉴런이 단순하게 input-ouput 구조로 되어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온 것이 활성화 함수이다. [각주:7]

     

    1987년 Perceptron 기계를 만든 Frank가 뉴욕 타임즈에 '스스로 학습해서 걷고, 쓰고, 말하고, 자기 자신을 재귀적으로 재생산해내고, 자신을 인식할 수 도 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각주:8] 이 이후에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AND/OR 문제는 계산 논리의 기초를 형성하는 기본 논리 연산이다. 특히 퍼셉트론의 능력은 기계가 기본적인 논리적 추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데 중요한 단계라고 생각하였다. AND 및 OR 문제는 선형으로 분리 가능하기 때문에, 단일 레이어 퍼셉트론과 같은 선형 분류기로 풀 수 있었다. 문제는 XOR 문제였다. MIT AI LAB에 있는 마빈 민스키는 1969년 'Perceptron' 책을 내면서 XOR 문제는 풀 수 없다고 수학적으로 증명하였다. Perceptron이 XOR 문제와 같은 비선형 분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져 다소 AI의 첫 번째 겨울이 발생했다. 멀티 레이어로 XOR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문제는 w, b를 학습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차가운 겨울을 녹인 것이 바로 Back Propagation이다. (Metacognition이 등장한 시대와 비슷하다.) 1974년 Paul이 박사 논문에 XOR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었다. 처음에는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70년도 후반에 민스키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가 1982년 논문을 발표해도 관심이 없어 묻힐 뻔 했다. 이후 1986년 제프리 힌튼이 다시 밝혀냄으로써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Paul이 먼저 제안한 방법이기 떄문에 이를 재발견이라 부른다. Back Propagation은 신경망이 오류나 손실에 따라 w, b를 효과적으로 조정하여 다층 퍼셉트론을 학습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딥러닝의 중추가 되는 알고리즘이다. 이를 통해 지금의 ChatGPT과 같은 LLM의 탄생까지 마주하게 되었다.

     

    https://developer.nvidia.com/blog/inference-next-step-gpu-accelerated-deep-learning/

     

     

    Back Propagation을 보니 위에서 말한 메타인지, 제1원리 사고법과 비슷하지 않은가? 결과의 오류나 손실에 따라 이전에 조정한 가중치를 다시 재조정하는 것은 마치 엉킨 실을 풀어내는 행위와 같다. 딥러닝의 진화도 내가 맞다고 주장하는(답은 "dog"야!) 감옥에서 벗어나 본질을 밝혀내는 사고법으로 일어난 것이다. 왜 내가 컴퓨터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또 다른 작은 우주라 했는지 조금이라도 와닿았으면 한다. 

     

    마무리

    결국 지식을 얻으면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 판단의 무리 속에서 아는 것이라 여겨 더는 듣지 않고, 아는 것이라 여겨 생략하고 무시한다. 왜곡이 생겨난다. 그렇게 반복이 되다 어느순간 나는 왜곡 속에 갇혀 감옥에 머무르게 된다. 감옥에 갇혀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게 지금까지 말한 제 1원리 사고법이나 메타인지, Backpropagtion같은 것들이다. 이는 단지 몇 가지 예시일뿐, 세상에는 명상, 요가, 운동, 글쓰기 등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고 그 사람의 성질에 따라서 실을 푸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그렇게 다시 엉킨 실을 풀어 우리가 마음 속에 진실이라고 늘 믿어왔던 것들의 경계를 과감히 넘어설 때는 지금 창문 밖에 보이는 벚꽃처럼 하얗고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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